대통령 말 한마디에, 법을 바꿔서 영훈국제중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나섰던 교육부가 한 달도 안 돼 입장을 바꿨다. 법을 개정해도 소급 적용할 수 없어 영훈국제중의 국제중 지정을 취소하기 힘들다는 걸 뒤늦게 시인한 것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앞서나간 교육부

영훈국제중이 부유층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학생들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지난달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일부에서 "영훈국제중의 지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현행법상 지정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76조는 '교육감은 5년마다 특성화중 운영 성과 등을 평가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3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운영되는 국제중은 언제든지 그 지위에서 배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그날로 보도자료를 내고 "국제중의 지정 목적 달성이 현저히 불가능한 경우에는 지정기간 내에도 취소 가능하도록 시행령에 근거를 마련하겠다. 이번 제도 개선이 영훈국제중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당시 교육부 박성민 학생정책과장은 "중대한 물의를 일으킨 영훈국제중에 적용을 안 하려면 법을 고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래 놓고 14일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박 과장은 "소급입법은 당연히 안 되는 것이며, 영훈국제중이 개정 법령에 따라서 취소가 가능한지는 교육감이 판단해 처리할 사안"이라고 물러섰다. "이번 법 개정은 영훈국제중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할 때 지정 취소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에 영훈국제중 한 학부모는 "학교가 지정 취소된다는 얘기를 듣고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가 시위도 했다"며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어떻게 무책임하게 지정 취소를 놓고 우왕좌왕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특정 대상을 겨냥한 소급입법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영훈국제중에 개정 법령을 적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외고·국제고, 의대반 운영하면 지정 취소

이날 입법예고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특수중뿐 아니라 외고나 과학고, 자사고도 지정 기간에 중대한 비리를 저지르거나 설립 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되면 교육감이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외고나 국제고에서 이과반이나 의대반을 운영하는 경우처럼 지정 목적에 맞지 않게 교육과정을 부당하게 운영할 때도 교육감이 지정 취소를 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최근 외고·국제고 39곳을 조사한 결과, 외고 6곳, 국제고 3곳 등 9곳이 수학 Ⅱ 등 이과 계열 수업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외고의 설립 목적은 '외국어 인재 양성'인데, 의대나 치대에 진학시키기 위한 이과반 수업을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시행령이 개정되면 이런 경우가 적발된 학교는 지정 취소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연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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