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교육부, 8월 유감 -경향신문- 

지난 22일 저녁 6시20분. 교육부 기자실에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찾아왔다. 여느 때라면 저녁 약속이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기자실을 하나둘 떠날 시간이다. 기자들은 일제히 서 장관의 입을 주목했다.

“과거 방식대로 대입 개선안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정부 내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시안이 나가더라도 확정안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됐습니다. 당, 청와대 비서실, 정부 부처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기자 여러분이 널리 헤아려주십시오. 전날 예정됐던 대입 개선안 발표 계획을 27일로 미룬 데 대해 장관이 직접 사과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복잡했다. 교육부는 이달 초 기자들에게 21일까지 대입 개선안에 대한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요청했다. 확정 발표 전 부정확한 보도가 나가면 학부모, 학생들에게 혼란만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1주일이 넘는 엠바고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자들은 회의 끝에 엠바고에 합의했다. 속도보다 정확성을 택한 것이다. 대신 폭넓은 취재가 필요하니 최소한 장관 브리핑 이틀 전에는 자료를 먼저 달라고 했다.

교육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보도하기 하루 전인 20일까지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기자들은 보도 시점을 연장키로 했다. 수험생들과 학교에 많은 영향을 미칠 정책을 충분한 취재도 없이 자료만 보고 보도하기에 급급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화난 기자단이 술렁이고 엠바고 파기까지 검토하고 나서야 장관이 기자실을 찾아왔다. 

아무 설명 없이 자료만 늦어지는 사이 기자실엔 이런저런 말이 돌았다. “세제개편안, 국정원 촛불 민심으로 가뜩이나 여론이 안 좋은 때 대입 개선안마저 호응을 얻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있는 것 같다” “자료 늦는 게 교육부 때문이 아니라 ‘윗선’의 뜻이라고 한다”. “정부 내 조율을 거치고 있다”는 장관의 설명은 이런 소문들과 뒤엉켰다.서 장관과 교육부는 불과 열흘 전인 12일에도 한국사 강화 방안을 당정협의에서 결론짓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보인 전력이 있다. 중요한 교육 정책이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4월부터 가장 공을 들이던 대입 개선안은 일주일 만에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기자실에선 “21일에 교통정리가 안된 안을 발표했으면 어쩔 뻔했느냐. 아찔하다”는 말이 나왔다. 서 장관이 한국사 브리핑 때 설문조사 등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는 “한국사 수능 필수화라는 극약처방을 설문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은 포퓰리즘의 극치”라는 비판도 터졌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서 장관이 이런 비판을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료 출신 장관 1호로, 취임 당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라는 기대를 안고 입성한 장관 아닌가. 처음 맞는 ‘선배 장관’인 만큼 더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교육부 공무원들의 자발적 충성도 대단했다. 이만하면 소신을 가지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그런데 지금 서남수의 교육부는 한곳만 바라보고 있다. 국민 여론이라고 포장했지만 막상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하루 만에 뒤집어질 정책은 세제개편안뿐만 아닌 것이다. 

8월, 냉방이 거의 되지 않는 정부서울청사 교육부는 무척 더웠다. 정치력과 소신이 실종된 ‘샐러리맨 장관’을 보는 후배 공무원, 그 장관이 내놓는 정책을 따라가는 기자들은 더욱 푹푹 쪘다. 더 한숨이 나는 건 불투명하고 원칙을 잃은 정책결정 과정, 비교육적인 결론을 내놓고 눈치만 보는 교육부 모습도 오래갈 것 같은 점이다. 불안하고 답답하다.

송현숙 정책사회부 차장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7225310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