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의 역설… 숙제도 못 봐주는 초등 돌봄교실 

[서울 1·2학년 신청자 작년 2배… 학습 質 하락 우려]

소득·맞벌이 여부도 안 따져 강사 1명이 20~30명 돌봐야

교육청 지원 예산은 제자리방학 중인 17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대영초등학교. 교실 한 개 반 크기의 '돌봄교실'에서 아이 7명이 전담강사 곁에 둘러앉아 색종이를 꽃 모양으로 접고 있었다. 교실 한편에서는 남자아이 4명이 레고 블록을 쌓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1명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지만 교실은 조용했다. 이 돌봄교실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학교가 운영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상황이 달라질 것 같다. 정부는 올해부터 소득·맞벌이 여부와 상관없이 초등학교 1·2학년 학부모 희망자 모두에게 무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집에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있는 부모들까지 돌봄 서비스를 신청해 돌봄교실에 참여하는 인원이 급증하고, 서비스의 질(質)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운영비는 그대로인데 신청 급증

서울의 경우 지난 15일 초등학교 예비 소집일에 돌봄교실 수요 조사를 한 결과, 희망자가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1·2학년 돌봄교실 신청자가 지난해(1만3255명)의 배 가까이 늘어난 2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무상 돌봄 서비스를 발표한 이후, 맞벌이가 아닌 가정의 자녀까지도 돌봄교실을 신청하고 있다"며 "심지어 '수영 학원에 가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아이를 돌봄교실에 맡기겠다는 학부모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예산은 작년과 비슷하다. 서울시 교육청은 돌봄교실 하나당 작년보다 600만원 오른 연간 2600만원을 책정했다.올해는 저소득층 학생의 급식비·간식비가 운영비에 포함돼 실질적인 운영비는 작년과 비슷하다는 게 서울시 교육청 설명이다. 이마저도 필요 예산의 60%만 확보한 상태다. 경기도 교육청은 올해 오후 돌봄교실 한 실당 운영비를 작년과 똑같은 연간 18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무상의 역설' 우려

이에 일선 학교의 돌봄 강사와 학부모들은 정부의 '무상 돌봄'으로 돌봄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가령 한 교실에서 지금까지 11명을 돌봤다면, 앞으로는 30명 안팎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 강사로 일하는 이모(48)씨는 "학교 측은 일단 돌봄교실 신청은 다 받고 학급당 30명씩 꽉꽉 채워 운영하겠다는데, 그렇게 하면 아이들을 방과 후에 제대로 돌볼 수가 없다"면서 "지금은 숙제도 봐주고, 간단한 공부도 가르치는데 인원이 늘어나면 그야말로 밥 먹이고 재우는 것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또 다른 돌봄 강사는 "그동안 운영비에서 아이들 장난감이나 재료를 구입했는데, 올해 아이들은 늘고 운영비는 그대로이니 출결 관리만도 벅찰 것 같다"고 했다.

☞초등 돌봄교실

방과 후 학교 안에 마련된 돌봄교실에서 맞벌이 가정 자녀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보육 서비스. 현재는 저소득·한부모 가정을 제외하고는 보육료를 받고 있지만 3월부터는 소득·맞벌이 여부와 관계없이 희망자라면 누구나 돌봄교실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간식·급식비는 수익자 부담이다. 

최윤아 기자 이해린 인턴기자(고려대 독어독문4) 현소은 인턴기자(연세대 정치외교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22/2014012200193.html